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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타에이] 졸업식에서 만나자.

NickX 2019. 6. 3. 18:03

사망소재

와타루시점

2016.01.04 UP







 2월 말. 얼어가는 땅이 다시 활기를 되찾을 무렵, 돌연 에이치가 쓰러졌습니다. 그 모습을 이 히비키 와타루는 잊을 수 없어요. 졸업 직전의 마지막 라이브였습니다. 황제 폐하는 그 어느 때처럼. 아니! 그 어느 때보다 더 찬란하게 빛나고 계셨습니다! 뜨거운 조명보다 더 불타오르는 눈동자로 노래를 부르고 계셨어요! 그런데 라이브가 무르익어갈 때였습니다. 노래를 부르던 에이치가 크게 휘청였어요. 에이치? 제가 그를 부축하려고 손을 뻗었지만 그는 이미 정신을 잃어버린 채 였습니다. 길거리에 있는 풍선 인형의 바람이 빠지는 것처럼 무릎이 꺾여서 그대로 쓰러졌지요. 아아, 저는 그때 에이치의 얼굴에 드리운 죽음을 기억합니다. 아마도 평생 잊지 못하겠지요?

 어라? 라이브 말입니까? 글쎄요, 아마 중지되었을겁니다. 그런 사소한 건 이 이야기에서 중요하지 않다고요? 자자, 계속 들어보시길! 이 희극의 음유시인 히비키 와타루가 자아내는 앙상블을!

 지금까지 황제 폐하가 쓰러지는 것은 몇 번 봐왔지만 그때만큼! 그렇게 짙은! 죽음의 냄새는 처음이었습니다! 죽음은 벌써 에이치의 발끝에서 턱 끝까지 차올라있었어요. 그래요! 그는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가련하게도! 꽃 피지 못한 꽃은 그대로 시들어가고 있었어요…. 에이치가 다시 눈을 뜬 건 쓰러지고 나서 일주일 후였습니다. 산소호흡기에 의지에 숨을 쉬는 그는 저를 보고 웃었죠. 햇살 같은 웃음. 흔히 말하는 천사와도 같은 웃음을 지으며 저를 바라보았어요. 에이치는 말했습니다.

 “와타루, 와줬구나.”

 “예. 황제 폐하. 자, 받으시길 이 장미꽃을! 아쉽게도 에이치의 몸에 안 좋다고 진짜 꽃은 빼앗겨버렸습니다. 하지만 대신에…, 자! 어떻습니까 이 조화를! 진짜 같지 않습니까? 진짜보다 진짜 같은 모조품입니다! 에이치.”

 “정말이네. 고마워, 와타루. 그리고 황제 폐하라고 부르지 말라니까…. 보다시피 나는 옥좌에서 쫓겨나서 이제는 이런 병원 신세라고. 꼴불견이지? 손가락 하나도 움직이지 않는다니까…. 황제는커녕 거지에 가까운 모습이라고 생각되지 않아?”

 “글쎄요! 에이치. 뭐, 이런 이야기가 있죠. 왕자는 거지를 부러워하여 거지와 자신의 모습을 바꾸었다. 그랬더니 아무도 거지가 왕자가 된 것인지 몰랐다. 그래요! 왕자와 거지는 별 차이가 없는 것이랍니다. 황제도 마찬가지예요. 자아, 그런 것은 잊어버리고 어서 빨리 자리에서 일어납시다. 일어나서 다시 학원의 황제로 군림하는 거예요! 이 장미처럼 화려하게! 진짜처럼 생기 넘치게…!”

 와타루는, 여전히 활기 넘쳐서 좋아. 에이치는 대답했어요. 저는 그의 머리맡에 조화 한 송이를 놓으면서 내심 생각했답니다. 왕자와 거지가 똑같은 것처럼! 천사와 인간도 사실 별다를 것이 없는 게 아닌가! 에이치의 턱 끝까지 차올랐던 죽음은 어느새 그의 눈에도 가득해있었죠. 저는 알 수 있었어요. 어째서냐고요? 광대니까 당연한 이야기입니다. 후후후, 그런 눈으로 보셔도 어쩔 수 없다고요? 정말입니다. 광대기에! 이 메피스토펠레스는 죽음을 볼 수 있었습니다. 에이치는 천사가 되어가고 있었습니다. 정말로 이제 사람이 아니었죠. 그것은 시체였을까요? 후후후 모르는 일입니다. 그것까진 모르겠군요! 아쉽게도 이 히비키 와타루 그렇게까지 만능한 존재는 아니기에….

 에이치는 눈을 뜬지 두 시간 만에 다시 잠들었습니다. 기절했다고 봐야 할지 잠들었다고 봐야 할지 모르겠군요. 천천히 눈을 감고 그대로 깨어나지 않았어요. 그 풍성한 속눈썹이 감추어놨던 눈동자를 보여준 것은 그로부터 삼일 후였으니까요. 예. 에이치는 죽어가고 있었답니다! 그의 몸이 그것을 준비하고 있었어요! 죽음의 예행연습이었다고 할까요? 역시 대단한 황제 폐하! 그것은 몇 번이나 반복되었습니다. 에이치가 눈을 뜨고, 금세 닫아버리고. 끝-.

 후후후, 아직 이 시시한 이야기는 끝나지 않았답니다. 조금 더 들어보세요. 그날은 시시한 이야기에 나오는 하찮은 학원의 졸업식이 열리기 이틀 전이었어요. 그날도 에이치는 눈을 떴답니다. 하지만 조금 달랐어요. 입원하고 나서 에이치는 길어봤자 서너 시간이면 다시 잠들어버렸었죠. 그날의 에이치는 하루 종일 깨어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날도! 에이치는 기절하지 않았어요. 잠자는 숲 속의 공주 놀이는 이제 끝인가요? 내가 물었죠.

 “후후, 와타루는 농담이 짓궂네. 그러게 이제 몸도 안정되었나 봐. 그렇게 많이 잤으니 이제 슬슬 괜찮아져야지.”

 “그렇다면 다행입니다…. 아 맞아요. 그럼 선물로 이걸 드리지요.”

 “이건…. 졸업식 초대장이네.”

 “네. 그렇습니다! 드디어 내일…. 저희들은 안락한 학원이란 곳에서 벗어나 무서운 야생으로 내팽개쳐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축하하기 위한 축제지요! 모두가 와서 이제 저희들의 고통을 축복하는 날입니다. 에이치도 주인공이라구요? 빠지면 안 됩니다. 후후후, 물론 무리하는 것은 좋지 않아요.”

 “당연하지. 졸업식인걸…. 빠지고 싶지 않아. 의사선생님께서도 이대로면 금방 퇴원할 수 있다고 그러셨어. 조금 있다가 검진하러 오시면 물어볼게. 졸업식 갈 수 있으면 좋겠는걸. 이래 봬도 학생회장이니까. 빠지면 모양새가 좋지 않잖아?”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에이치.”

 응, 졸업식에서 보자. 와타루. 마지막으로 황제는 말했습니다. 예. 그것이 마지막이었어요. 졸업식이요? 저도 참석하지 않아서 어떻게 되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이런? 궁금증이 많으신 분이군요. 어쩔 수 없이 이 광대가 이 희극의 결말을 말씀드리죠. 에이치는 죽었습니다! 저런. 안됐죠. 그의 몸은 마지막 발악을 하던 것이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살아있다고, 살고 싶다고 발악하던 것이었어요! 저는 왜 못 알아보았던 것일까요? 그의 머리끝까지 차오른 죽음을 보았을 텐데! 어리석은 히비키 와타루입니다. 텐쇼인 에이치라는 자가 하늘로 날아가 버리는 것을 부정하고 싶었을지도 모릅니다. 아니 그렇기 때문에! 몰랐던 것이겠죠. 알았더라면 이 이야기는 그래도 조금 해피엔딩이었을지도 모릅니다. 최후의 순간을 안다는 것은 꽤 소중한 일이니까요. 하지만 아쉽게도 이 이야기는 웃긴 광대극이기 때문에! 그런 결말은 있을 수 없었습니다.

 저는 졸업식 따위에 참석하지 않았어요. 대신에 장례식에 참석했죠. 학생의 교복 대신 어두운 상복을 입었답니다! 졸업식에서 보자. 그는 거짓말쟁이에요. 그렇게 말해놓고 저희가 만난 것은 장례식장이었으니까 말이에요! 제가 본 것은 죽음 그 자체였습니다. 텐쇼인 에이치는 사라졌어요! 영원히! 주인을 잃은 광대는 이렇게 빙글빙글…. 빙글빙글…. 어떻습니까 당신도 이렇게 돌아볼까요! 빙글빙글…. 줄이 끊긴 마리오네트처럼 춤춰봅시다! 하하하! 하하하! 하하하!

 이 이야기는 이렇게 끝이랍니다. 시시하죠? 상상했던 것보다 더 시시하지 않습니까? 재미없군요. 광대극인데! 재미가 없으니 이번 공연은 망했어요. 끝입니다. 추락입니다! 떨어진 땅바닥은 암흑이군요? 어라? 이런 재미없는 이야기를 듣고 울고 계시는군요. 어째서입니까? 괜찮냐고요? 히비키 와타루는 슬프지 않냐고요? 재미없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울 이유가 있나요? 당신은 이상한 소리를 하시는군요!

 이렇게 이 음유시인의 노래는 끝이 났습니다! 히비키 와타루는 생각합니다. 아직도 기억합니다! 텐쇼인 에이치의 관이 닫히던 순간을! 황제가 땅 속으로 기어 들어가는 그 순간을! 아…. 놀랍죠? 놀랍습니다! 자, 그럼. 관람료 대신 질문을 하나 해드리죠. 풍선을 잡아주던 손이 끈을 놓쳐버리면 풍선은 어떻게 될까요? 후후후, 그래요! 펑입니다! 펑! 저 하늘 높이 올라가서 펑하고 터지지요! 아아, 이 얼마나 멋진 광경인가요! 자아, 돌아요. 돌읍시다. 빙글빙글 빙글빙글.

 빙글빙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