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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츠루키요] 선인장의 봄

NickX 2019. 6. 3. 19:24

15년도에 트위터에서 봇형식으로 연성했었던 걸 재정리 했습니다이사 전 티스토리에 옮긴적 있으며 사챈에서 연재하기도 했습니다

츠루미카 베이스의 츠루키요

츠루마루의 일기형식으로 진행합니다

2015.09.30 -> 2017.11.10 up

 

 

 

1.

선인장 가시에 찔렸다.

오늘은 주인에게 선물을 받았다선인장이라는 이름의 서양 식물이었다그것을 처음 봤을 때 내가 느낀 감상은 ‘기괴하다였다꽃이 피기도 한다는데 도대체 이 가시 덩어리에서 어떻게 꽃이 핀다는 건지도저히 상상이 되지 않았다무엇보다 무언가를 키우는 취미 따위는 가지고 있지 않았다나는 곤란하게 눈썹을 찌푸리며 그것을 받았다관심도 없고자신도 없고.  그래서 마침 옆에 있던 그 아이에게 선인장을 넘겨줬다그 아이는 그걸 받아들곤 수줍게 볼을 붉히면서 무어라 내게 말했다뭐가 “꽃을 피울 수 있도록 노력할게요인지.

다들 자러 갔을 시간인데 어쩐지 밖이 어수선하다그러고보니 이케다야로 출진이 있다고 들은 것도 같다야전 부대에 그 아이가 포함된 걸로 기억한다소식을 들은 야마토노카미 야스사다가 주인에게 꽤 화를 냈던게 며칠 전이지그걸 보면서 내가 무슨 생각을 했더라퍽 눈물겨운 우정이라고 비웃었던가?

 

2.

인간의 몸은 생각보다 불편하다음식도 섭취해야 하고잠도 자야 하지마지막으로 잠을 취한지 벌써 40시간 가까이 지났다툭 치면 쓰러져 잠들 것만 같아 붓을 들었다혼마루의 모두가 잠들지 못한지 이틀이다이렇게 될 줄 알았으면 그때 속 편하게 술이나 마시고 있진 않았을 텐데.

이케다야로 출진했던 야전부대는 2시간도 채 지나지 않아 돌아왔다카슈 키요미츠의 부상이었다정말 목이 덜렁거리는 채로 겨우 살아있는 모습을 보는 건 꽤나역겨웠다보름달을 보며 혼자 조용히 술을 홀짝이며 즐겼던 평온은 순식간에 끝이었다평온은 온데간데없이 자취를 감치고 혼마루에 남은 건 울음소리뿐이었다소란에 깬 어린아이들의 울음소리주인의 비명다른 이들의 비통한 한숨.

걱정하는 이들에 둘러싸여 모습도 제대로 보이지도 않는데다른 이들의 머리 사이로 그 아이를 보았다들것에 눕혀져 수리실로 옮겨지는 모양새를 멍하니 눈에 담았다.

수리실의 문이 닫히자마자 나는 몸을 돌렸다방으로 돌아갈 셈이었는데 어느새 정신 차리고 보니 그 아이의 방 앞이었다뭔가에 홀린 게 틀림없지방문을 열었다문은 잠기지 않았다화장대 위엔 선인장이 곱게 올려져 있었다 화장대에 미세하게 쌓인 먼지를 손으로 훔쳐내며 생각했다예쁘게 꽃을 피워주겠다는 건자기 목이 꽃처럼 따일 거란 의미였나선인장을 한참 바라보았다줄기에서 떨어진 꽃이 바닥에 뚝뚝 피를 흘리던 모습을 떠올리며.

별안간 문이 열리더니 그 아이의 방으로 울어 얼굴이 엉망이 된 야마토노카미 야스사다가 들어왔다그의 등 뒤로 비치는 햇살에 나는 그제야 해가 뜬 걸 알아차렸다그의 얼굴을 보고 그 아이가 울면 저런 모습인가 궁금해졌다그와 그 아이는 다른 듯하면서도 얼굴이 많이 닮았었으니나는 멋대로 방에 들어온 것을 변명하지 않았고 그 또한 내게 묻지 않았다나는 그와 교대하듯이 방을 나왔다수리실 앞으로 돌아가자 곧이어 주인도 모습을 드러냈다그대로 몸을 가누지 못하고 주저앉아 흐느끼는 주인의 모습을 보고 나는 그 아이를 행방을 알 수 있었다.

하하우습지도 않지이런건 전혀 놀랍지 않다너무 뻔해서 역으로 지루했다죽어버릴 정도로 지루한 촌극이었다지금은 장례 준비가 한창이다나는 머리가 아프다는 핑계로 방으로 돌아와 있었다검에게 장례식이라니검도 저세상이 있을까?

 

3.

카슈 키요미츠가 부러졌다그의 시신은 찾을 수 없었다애초에 검은 죽어 시신을 남기지 않는다산산조각 나버린 쇳조각 몇 개가 그가 남긴 모든 것이었다주인은 혼마루 뒷산에 그걸 묻었다.

장례식이라고 부르기엔 민망한 작별 인사를 끝으로 혼마루는 다시 평온을 되찾았다다들 금세 털고 일어난 척 웃었다야마토노카미 야스사다 마저 애처롭게 미소 짓고 있었다이 평화에 속이 탔다이유를 알 수 없었다그냥 짜증이 난다왜 다들 웃는 거지?

 

4.

두 번째 카슈 키요미츠가 왔다지루해서 죽어버릴 거 같아.

 

5.

늦잠을 잤다눈을 떴을 땐 이미 해가 산중턱을 넘어가고 있었다주인은 일어나지 않아 걱정했노라고 내게 말했다그 날 이후로 주인은 걱정이 많아졌다꿈을 꾸진 않았다아쉽지그래나도 기대하고 있었다내심 생각했었다그 아이가 꿈에 나타나선 .

저는 츠루마루 씨를.”

내가 미쳤지놀라워내가 이런 생각을 했었다는 것 자체에 방금 순수하게 놀랐다.

 

 

6.

오늘의 난 비번이었고두 번째 카슈 키요미츠는 잃어버린 련도를 쌓으러 이와토오시와 함께 출진했었다아침 식사 때 주인의 목소리로 그걸 전해 듣는 것 외엔 오늘 나와 두 번째 아이와는 전혀 관련 없는 하루를 보낼 예정이었다분명 그랬을 터인데.

미카즈키의 방에 놀러가다 출진에서 돌아온 카슈 키요미츠를 만났다그가 현현하고 처음으로 나눈 대화였다두 번째 카슈 키요미츠는 내가 생각과 달리 진짜 카슈 키요미츠였다목이 덜렁거리지도 않았고 눈동자 색 또한 같은 핏빛이었다하지만 그만큼 내가 모르는 카슈 키요미츠였다그 아이와 똑 닮은 얼굴로목소리로내게 ‘처음 뵙겠습니다.’ 라고 말했다그 아이의 눈에 깃들어 있던 두근거림은 흔적도 찾아볼 수 없었다.

 

 

7.

미카즈키와 함께 원정을 다녀왔다.

가을이라 빨갛게 물든 단풍이 아름다웠다손을 잡고 산길을 발맞추어 걸었다계곡도 보았고꽃도 보았다꽃보다 아름다운 이의 얼굴도 보았지태양의 입맞춤을 받은 것처럼 찬란하게 빛나는 그의 얼굴을 계속 바라봤었다어이없는 사실을 하나 적는다전혀 설레지 않았다놀라웠다너도 놀랐니?

말해봐내게 무슨 짓을 했어무덤에 들어갈 때 내 심장도 같이 꺼내 갔나형체도 안 남고 사라지는 주제에인간도 아닌 주제에.

.

날 좋아하는 주제에.

 

8.

두 번째는 내가 준 선인장에 별 관심 없어 보였다.

어떻게 똑같은 카슈 키요미츠인데 저렇게까지 다를 수 있을까두 번째는 나를 보고 얼굴을 붉히지 않았다이 점이 가장 불쾌하다그가 이대로 계속 선인장을 방치한다면선인장은 그대로 시들어버리는 걸까그 아이의 목숨처럼?

 

9.

주인이 도검남사 전원에게 부적을 나눠줬다본체가 부러져도 수복되는 그 부적말이다하나만 해도 꽤 높은 값을 할텐데 한 사람당 하나씩 주는 걸 보면 꽤 저번 일이 충격이었나 보지.

미카즈키는 부적에서 좋은 향기가 난다며 웃었다그의 미소에 나도 따라 웃었던 것 같다어찌 그의 얼굴을 보고 웃지 않을 수 있을까그럴정도로 미카즈키의 웃음은 아름다웠다그래서 좋았다평소라면 그걸 본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았을 텐데 오늘은 어째선지 기분이 나빴다이 조그만 파란색 주머니가 그 아이에게 있었더라면.

 

이 감정은 미련인가?

 

부적에선 좋은 향기가 난다향긋한 꽃향기 같기도하고 설탕과자 같은 단내가 나기도 한다손 안에 꼭 쥐고 있노라면 따뜻한 기운이 느껴지기도 한다순수한 영력의 덩어리니까 도검남사에게 기분 좋게 느껴지는 건 당연하겠지만묘하게 말이야생각해봐그렇지이 부적이 있으면 죽고 싶어도 죽지 못해족쇄나 다름없잖아그 아이가 죽고내 목에 족쇄가 채워진 거야.

 

10.

원정을 다녀왔다피곤해그리움이 눈꺼풀 안쪽에 다닥다닥 달라붙어 있어서 잠을 잘 수가 없다부대 구성은 나와 이치고 히토후리나마즈오 토시로그리고 호네바미 토시로총 네명이었다무슨 기억상실 조합인지대장을 맡았을 땐 구성을 듣고 혀를 찼다예전에는 저 기억을 잃은 불쌍한 형제들을 보며 마음을 삭히는 미카즈키를 동정했었다자기만 가지고 있는 추억이 추억인가혼자서 끌어안고 괜찮은 척 하는 게 우스꽝스러웠다그런데 그들의 앞에 딱 서니 미카즈키를 비웃을 처지가 아니란 걸 알았다지금 내 꼴이 그보다 더 우스웠다.

그 아이의 마음은 그 아이와 나만의 비밀이었다그럼 그 아이가 없는 지금그 마음은 누구의 비밀이지나의 비밀인가나는 그 아이의 비밀을 알았을 뿐 그게 내 것인 적은 없었다그럼 그 아이와 함께 그 마음도 사라졌을 텐데나는 어째서지금 이렇게이렇게까지……….

 

네가 보고싶어

 

11.

매일이 놀라움의 연속이다내가 사랑하는 경이로움의 연속이 아니라단순한 놀라움의 지속그 아이에 대해서도나에 대해서도 놀라울 뿐이다나도 내가 이렇게까지 미련이 많은 남자인 줄 처음 알았다오늘 나는 미카즈키의 무릎에 얼굴을 묻었다그가 깜짝 놀라 나를 부르는 소리를 들었지만 그저 묵묵히 눈을 감았을 뿐이다그리고 조용히 빌었다이것이 사랑이 아니기를.

미련으로 가득 찬 이 감정이 부디 사랑이 아니기를닿을 곳 없는 이 마음이 그 아이를 향한 게 아니길달을 끌어안고 귀신에게 빌었다원한다면 무덤 속이라도 따라갈테니부디내가 너를.

 

12.

내일 아침 일찍 출진한다잠이 안와.

 

13.

꼴사납게 왼팔이 날아갔다얼마나 깨끗하게 도려내졌냐면 고통보다 먼저 적의 실력에 감탄했을 정도다방심해서 그렇다곤 변명하지 않겠다절단면에서 피가 분수처럼 쏟아졌다한꺼번에 이렇게 피를 뿜어낼 수 있다니인간의 몸에 대해 또 다른 사실을 알게 되었다땅바닥에 떨어진 팔을 보니 현기증이 일었다시야가 기울고 미카즈키가 비명처럼 내 이름을 불렀던 걸 기억해그 다음은 어둠이었다막연하게 무덤 속으로 돌아왔다고 생각했었다별다를 것도 없었지그 순간 나는 한번 죽었었으니.

누워있는 동안 꿈을 꿨다마치 예전의 그날 같이 느껴졌다그 아이가 있었다두 번째가 아닌 그 아이가 있ᄋᅠᆻ다그는 수줍게 평소처럼 뺨을 붉게 물들이고 나에게 다가왔다두발자국 떨어진 곳에 조심스럽게 멈춰 서 내게 말했다.

츠루마루 씨보여드리고 싶은 게 있어요.”

내가 대답하기도 전에 그는 등 뒤에 감춰놨던 걸 꺼냈다.

약속 했잖아요.”

꽃이 핀 선인장이었다꿈이 거품처럼 녹아내렸다.

눈을 떴을 때 나는 내 방에 누워있었다미카즈키가 내 손을 잡고 울고 있었다.

츠루야-.”

애달픈 목소리가 나를 불렀다본능처럼 그를 끌어안아 달랬다미카즈키난 괜찮아여기 있잖아부적 덕에 살아났다고 누가 말해주지 않아도 알았다거봐 내가 말했잖아족쇄가 될 거라고내내 죽고 싶은 건 아니었으나 기회가 됐으니 떠나곤 싶었다당연히 죽었다고 생각했는데미카즈키를 품에 안고 생각했다그 아이의 눈동자처럼 붉디 붉은 꽃을카슈 키요미츠가 피워낸 사랑을.

 

14.

좀 더 쉬라는 주인의 말을 고사하고 내번을 맡았다내번을 좋아하는 건 아니었지만 가만히 누워 있는 건 좀이 쑤셔서 못하겠다그리고 뭣보다 나는 확인하고 싶은게 있었다일을 마치고 난 두 번째의 방으로 갔다내가 갔을 때 방의 주인은 자리를 비우고 없었다망설임 없이 나는 문을 열었다그리고 확인했었다두 번째의 화장대 구석에 먼지 쌓인 채로 방치된 그것을꽃봉오리가 맺히기도 전에 시들어 버린 선인장을 보았다입안이 썼다.

"뭐야츠루마루 씨남의 방에 함부로 들어오면 어떡해요?"

어느새 돌아온 두 번째가 내 팔을 잡아당기며 날 방에서 쫓아냈다그 손을 뿌리치며 그의 목을 잡아채고 말했다너를죽이고 싶어.

 

"?"

당황한 두 번째를 내팽개친 채로 방으로 돌아왔다내 방에선 달이 보이지 않아 아쉬웠다칠흑같이 어두운 하늘이다이제야 깨달았다아니지오래 전부터 알고 있었다인정하기 싫었을 뿐그 아이의 비밀은 나만이 알고 있었지만결코 나의 것이 아니었다나의 비밀이 아니었었다하지만 그 선인장은 나였다그 아이에게 건네준 그것은 나였다.

 

15.

꼴사나운 영감이다.

계획되어 있던 출진에서 도망친 채로 방에 틀어박혔다무슨 일이니문 밖에서 들려오는 주인과 미카즈키의 조심스러운 음성이 듣기 괴로웠다지루해서 영혼부터 죽어가게 내버려 둬.

 

16.

방에 스스로 갇힌 내가 그동안 뭘 생각했는 줄 알아삼 일 간 난 내가 가장 경멸하던 행동을 했다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 말이다침상에 가만히 누워서 천장을 바라볼 뿐이었다어떤 놀라움도 없이 그저 추억을 떠올리는 짓을 했다과거에 모든 걸 사로잡힌 할아범이 되었다추억시간이 지나면 그 어떤 일도 괜찮게 느껴진다는데 딱 그거로군추억이라고 부를 수 없는 기억이다나는 기억을 되새김질했다겪었던 주인들을 생각했고내가 지냈던 거처를 떠올렸다지금의 방은 언젠가의 무덤처럼 어둡고신사처럼 고요했고창고 안처럼 지루했다그런 방 안에서아주 오래전에 그랬듯이시체 옆에 초야를 치르는 처녀처럼 수줍게 누웠던 그때처럼그 아이의 시신 곁에 누웠다구토가 치미는 행동이었다네 시신을 상상했어그리고 그 곁에 누워서 너를 생각했어네 떨리는 손길이 조심스럽게 내 목을 매만졌을 때내가 장난삼아 얼굴을 가까이 가져가니 방황하던 그 눈동자를꽃을 피우겠다는 너의 목소리를.

밤늦게까지 나는 잠을 이루지 못했다그 어떤 것도 이젠 남아있지 않았다나를 괴롭게 만드는 건 이제 딱 하나 남아있다모든 게 부질없는 지금도 나를 고통스럽게 만드는 건차라리 혀를 깨물고 콱 죽어버릴까 생각하게 하는 건꽃을 피울 수 없는 너와 나였다.

 

 

17.

어린아이는 좋아하지 않아.

 

죽다 살아나더니 이번엔 고삐 풀린 망아지가 됐다한심하다고 해도 좋다무덤에서 기어 나와만 준다면 무슨 말이든지 들어주마.

전투는 안된다는 주인을 조르고 졸라 한동안 1부대로서 출진하게 되었다검을 휘두르는 순간이야말로 최고로 마음이 평온한 시간이지살을 베고 뼈를 가를 때의 쾌락을 이길 수 있는 건 없다아무 생각 없이 몸의 근육이 움직이는 거에만 집중하면 다른 잡념이 사라진다.

평소에도 과격한 편이지만 오늘은 더한다고 부대장인 미카즈키가 한 소리 했다뭐 어때내가 죽어도 두 번째 츠루마루 쿠니나가가 올 텐데.

 

18.

최악이다모든 게 엉망진창이야검으로 만들어지고 인간이 된 지금까지오랜 세월 동안 내 행동을 후회한 적이 없었다지금은 그래후회하고 있다어린애가 된 것 같아시간을 되돌리고 싶다고 생각할 정도로요 며칠 나는 출진에만 매달렸다하루 종일 전장에서 뒹굴고 혼마루에선 잠만 잤다검을 쥐고 있지 않을 때면 빈손이 어색해 주먹을 쥐고 있었다그런 나를 보고 언젠가 미카즈키가 내 손을 잡으며 말했었다.

"요즘 너무 무모하구나조금 냉정해지는 편이 어떨까신중해지렴."

거기다 대고 나는 뭐라 답했더라걱정하지 마미카즈키내가 꼬마도 아니고나는 꼬마였다단도 아이들보다도 미숙하고 어리석었다오래 살았을 뿐인 성격 더러운 애새끼미카즈키가 날 지키다 다쳤어창에 찔리겠구나 하는 순간 내 앞에 파란 가리기누가 흩날렸다뼈가 부서지는 소리가 났고 미카즈키의 본체가 적의 머리를 꿰뚫었다.

미카즈키!!!”

초승달이 내 품으로 저물었다미카즈키가 토한 피를 뒤집어쓴 나는 떨리는 손으로 그를 지탱했다그의 눈 안에 새겨진 초승달이 빛을 잃어가고 있었다츠루야다친 곳은 없느냐떨어지는 고개가죽어가는 달이내 뺨을 쓰다듬었다기다려미카즈키너 마저 내 곁을 떠나면 안 돼수리실까지 미카즈키를 안고 달렸다사실 정확하게 기억나지가 않는다내가 비명처럼 외친 이름이 미카즈키인지어느 누군가인지수리실 앞을 지키고 앉아 있는 동안 현기증이 일었다그날이 얼마 전처럼 느껴졌다그때도 피 냄새에 질식할 거 같았지온몸을 뒤덮은 미카즈키의 피 때문에그래서잠시 착각을 했다.

저 안에 들어가 있는 게 그 아이일 거라는 착각을장지문에 머리를 쾅 소리 나게 박고 고백했다.

"사랑해그러니까살아."

눈물이 났으면 좋았을 텐데자꾸 어린애나 바랄 법한 게 떠올라죽어가는 미카즈키를 이용하기 전으로 돌아가고 싶다날 위해 다친 그를 자기만족에 쓰기 전으로 가고 싶다그 아이가 살아있던 ㄴㅏㄹ뭐야눈앞이이상해

 

19.

오늘 아침에 미카즈키가 드디어 눈을 떴다일주일 만이었다그리고 나는 노골적으로 그를 피해 다녔다죄책감 때문이다그리고 솔직히 말하자면 그가 두려웠다그의 입에서 나올 말이 무서웠다그가 특유의 표정으로 내 손을 잡고 '츠루야네가 나를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줄은 몰랐단다.' 하고 말하지 않길 원했다정신을 잃고 누워있던 그가 어쩐지 내 고백을 들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자꾸만 들었다아니야미카즈키미안해네가 아니야네가 아니었어저녁식사 후에 그는 나를 따라 내방으로 왔다양반도 못 되는 영감이지미카즈키는 그저 차를 홀짝일 뿐이었다그리고 시답지 않은 말을 하며 웃었지.

"다친 곳이 없다니 다행이구나나도 무사히 나았으니 잘 된 일이 아니겠니하지만 다음에도 이렇게 된다고 장담할 순 없으니앞으론 무모한 점을 조금 고쳤으면 좋겠구나"

알았어적당히 고개를 끄덕였다미카즈키와 눈을 마주칠 수가 없었다불편해서 으깬 만쥬가 되어버릴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일주일 동안 무슨 일이 있었느냐그러고 보니 오늘 나온 경단이 남던데 먹지 않았나?, 미카즈키는 쓸데없는 말을 한창 했다결국 나는 한숨을 쉬며 입을 열어야 했었다.

피곤해서 일찍 잠들고 싶어내일 마저 이야기하지.”

"알겠다요양을 잘해서 힘이 넘쳐서 말이야이 할아범이 폐를 끼쳤군."

그가 자리에서 일어났다그리고 소매에서 무언갈 꺼내 내게 주었다부적이었다내가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그를 올려다보자 그가 미소 지었다.

"나도 사랑한단다츠루야."

그는 내 손을 그러쥐었고 나는어쨌더라 웃었는지울었는지내 반응이 퍽이나 이상했는지 미카즈키는 금세 자리를 피해주었다내가 부끄러워한다고 여긴 모양이었다전혀 달랐다그가 나간 방문을 멍하니 보며 많은 생각을 했었다아니 아무 생각도 하지 않았던가지금도 마찬가지다내 머리를 지배하고 있는 생각은 하나뿐이다누가 나를 과거로 돌려보내 줘무덤 속이여 좋아신사여도 좋고주인이 누구든 신경 쓰지 않겠어 제발 이 인간의 몸을 얻기 전으로 되돌려줘죄책감에 고개를 들 수가 없다.

저 하늘에 떠있는 아름다운 달나는 달밤의 하늘을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걸 기대했었다이제는 이루워지지 않는 꿈이지나는 저 달을 땅으로 끌어내렸다거짓을 속삭여서 미카즈키의 눈을 가렸다시야가 계속 점멸했다누가 억지로 눈을 감기는 것처럼 앞이 검게 변했다가 제 색을 찾기를 반복했다이상한 생각이 나를 몰아붙였다오한과도 같은 감각이 발끝부터 나를 감쌌다불에 타오르는 감각이었다가만히 서있으면 고통을 참을 수가 없어서 나도 모르게 뛰쳐나갔다알 수 없는 무언가가 내 등을 밀고 있었다어디로 가는 지도 모른 채 걸음을 옮겼다윙윙거리는 이명이 그 아이의 목소리처럼 들렸다.

찬바람이 내 뺨을 차게 때렸을 때 겨우 발을 멈출 수 있었다혼마루와 멀리 떨어진 이름 없는 산이었다-. 아무 생각 없이 머리를 쓸어 올렸을 때 나는 깨달았다.

나 검은색이로군?

내가 바뀐 것처럼모두 바꿔버릴까이미 답은 나와 있다바꾼다면 언제부터미카즈키를 이용하기 전그 아이가 죽기 전아니면내가 사랑하기 전으로 할까.

 

20.

익숙한 나팔 소리가 들렸다나를 찾아온 이들이었다동시에 나를 죽이러 온 자들이었다산 밑에 작게 1부대의 깃발이 흩날리는 게 보였다내가 빠진 자리는 누가 차지했을지 호기심이 일었다그들을 맞이하러 분주하게 산을 내려갔다큰 무대의 시작이다기다림은 잠깐이었다산 중턱에서 난 그들을 맞이했다어서 와반가운 나의 동료들그리운 얼굴을 한 명 한 명 둘러보던 나는 그대로 굳을 수밖에 없었다놀랍군왜 네가 여기 있어?

돌아가요츠루마루 씨.”

카슈 키요미츠그가 내게 손을 내밀었다빨갛게 물든 손톱은 기억 속의 모습보다 조금 더 길어 보였다그 손을 한번 보고 그의 눈을 보았다붉은 그 눈에는 의문이 담겨 있었다그리고 지쳐있었다그뿐이었다절로 웃음이 터져 나왔다.

"하핫.  돌아가다니 어디로?"

"혼마루로 가요주인이 원래대로 돌려줄 거예요."

"원래대로라.. 꽤나 달콤하게 들리는 조건이네"

그렇지만주인이 말하는 원래가 내가 말하는 원래는 조금 다를 테니까검을 고쳐 쥐었다카슈 키요 미츠가 내민 손을 거두고 검을 쥐려 하는 모습을 보았다기다려주지 않고 난 앞으로 튀어나갔다.

"츠루야!"

검과 검이 맞닿는 소리가 났다생각해보니 누군가와 검을 맞대는 건 정말 오랜만이었다동정으로 물러진 미카즈키의 검을 밀치고 옆구리를 노리는 검을 피했다.

"위험해위험해. 6:1이라니.  일기토엔 별로 자신이 없는데 너무 한거 아닌가?"

"츠루마루 공이 순순히 그 검을 내려놓으면 해결될 문제입니다."

"이런 상황에서도 그런 경어라니자네에겐 조금 놀라게 되는군!"

뒤에서 다가온 이에게 검을 던졌다-. 무언가 박히는 소리가 났다그대로 달려가 검을 뽑고 다시 휘둘렀다누가 누군지 솔직히 구분되지 않았다그저 시야 끝에 계속 붉은색이 걸렸다피를 뒤집어썼다예전엔 피를 맞으면 홍백이 되었는데 이젠 검은색이 더 짙어질 뿐이었다이것도 나름대로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다친하게 지냈던 이를 베는 것도 괜찮았다오히려 아무 느낌 없이 담담했다그렇군이런 놀라움이 있었군.

누군가의 팔을 베었고다른 누군가는 다리를 잘랐다또 누구는 배를 찔렀다그럴수록 점점 낯익은 이들이 낯설어졌다이 순간 나는 괴물이었다.

 

21.

고요해졌을 땐 나도 상태가 좋지 않았다왼쪽 팔꿈치는 부서졌고 오른쪽 다리는 부러졌는지 질질 끌렸다오른쪽 눈을 베어 시야가 어그러지기도 했다한계였다검에 달라붙은 피를 털어냈다우선 자리를 피해야지.  1부대를 쓰러트렸지만 분명 지원군이 올 터였다쓰러진 이의 손을 무심하게 밟았다뼈가 부러지는 소리가 났다."어째서!! 왜 이러는 거야?! 도대체 뭘 위해서진심으로 섬긴 예전 주인이라도 있어지금 주인이 불만이야다들 역사를 지키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는데 왜 당신은!! 당신만 과거를 바꾸겠다고 이러는 거야!"

카슈 키요미츠가 소리쳤다그는 본체를 지팡이 삼아 힘겹게 몸을 일으켰다그 모습이 퍽이나 안쓰러웠다진심을 다한 주인스쳐 지나간 이들의 얼굴도 제대로 기억나지 않았다그쪽은 단순한 과거일 뿐이었다내가 진심을 다한 건너뿐이었다그래너를 지키고 싶었다.

발악하는 어린 검에게 천천히 다가갔다떨리던 다리는 결국 힘이 풀렸는지 그는 털썩 주저앉았다.

"하나만 묻지너 그 선인장에 어떻게 생각해?"

카슈 키요미츠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기억이 나지 않는 모양이었다.

"선인장?"

"그럼 질문을 바꿀까너는 나를 어떻게 생각하지?"

"이런 상황에서.  그런 말이 나오나요?" 

"아주 중요한 거야틀에 박힌 물음만으론 놀라움이 부족하지 않겠어그럼 한번 더 묻지카슈 키요미츠츠루마루 쿠니나가를 어떻게 생각하지?"

"귀찮고.  민폐야영문을 모르겠네요지금은 짜증나."

"하하하!!! 역시 그런가여전히 넌 놀라움이란 걸 모르는 녀석이구나그런 예상했던 대답을 내놓으면 재미가 없잖아귀찮고민폐에영문을 모르겠는 짜증 나는 녀석내가 아는 누구랑 똑같은데누군지 알겠어?"

"알 리가 없잖아요."

"그렇지네가 모르는 사람이니까."카슈 키요미츠가 입술을 깨물었다내 말장난에 놀아나는 게 기분이 안 좋은듯했다나는 그의 어깨를 잡고 천천히 쓰러트렸다그리고 그에게서 해를 가리듯 덮쳤다작구나여전히.

"뭘 위해서냐고 물었지 위해서였다면 믿을 건가?"

아니지단순히 날 위해서다자기만족을 위한 거지나는 고개를 저었다.

"보고 싶은 이가 있어건방지고 귀찮은 애였다그리고 멋대로 죽었어다시 보고 싶었을 뿐이야."

"죽었다니 그건. "

무슨 말을 하려는 카슈 키요미츠의 입을 검지로  눌렀다아무 말도 듣고 싶지 않았다곪아 버린 감정을 그저 토해내고 싶었다.

"우리 같은 존재도 죽으면 천국에 갈 수 있을까그렇다면 굳이 멀리 돌아가지 않아도 되겠지."

하아한숨을 뱉었다그런 표정 짓지 마내가 아는 누구랑 더 닮아 보이니.  선물을 주마나와 함께 성질이 변했을지도 모르지만본질은 같을 테니 아마 괜찮을 거야난 모든 걸 처음으로 되돌릴 생각이었다지금도 그건 별로 변하지 않았어그렇지만 조금 지쳐서 편한 길로 돌아가기로 했다함께 해줄 거지고통스럽겠지만 참아한순간이니까넌 잠깐 정돈 아파도 괜찮잖아.카슈 키요미츠의 입술 아래에 난 점에 입을 맞췄다동시에 내 본체로 등을 꿰뚫었다피가 울컥하고 쏟아져 나왔다멈추지 않고 쑤셔 넣어 그의 배까지 푹 찔러 넣었다.

기다려내가 간다나의.  카슈 키요미츠에게

어둠이다그대로.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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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바보 같은 감정의 반복이다얄궂게도 그의 흔적을 지우는 일은 내 몫이었다츠루마루 씨의 방을 정리하면서 그의 일기에 손을 댔다그의 감정의 쓰레기통을 들여다보았다종이에 스며든 먹이 모두 그의 어둠처럼 느껴졌다그는 나를 사랑했었다나면서내가 아닌 존재를 사랑했었다.

"사랑"

입안에서 굴려본 그 단어는 마치 돌을 씹는 것처럼 불쾌했다사랑은 전부 다 그와 같을지 궁금했다그의 사랑이 어쩌면 저주가 내 몸에 사라지지 않을 상흔을 남겼다옷 위로 흉터가 있을 자리를 매만졌다그의 검이 꿰뚫었던 자리였다그와 함께 죽음을 맛보았던 그 흔적. . 그것은 내가 부적으로 되살아난 순간에도주인의 수리에도 사라지지 않았다어쩌면 영원히 나에게 남아있을지도 모른다나는 그의 일기를 집어 들었다.남겨진 방은 그 '츠루마루 쿠니나가' 방이라기엔 너무나 휑했다창밖이 소란스러웠다먼지를 털며 창문을 열자 그가 보였다두 번째 츠루마루 쿠니나가였다두 번째 츠루마루 씨는 여전히 새하얗지만 내가 알던 그와 다르게 호탕하고밝고남을 괴롭히기 좋아하는 천진난만한 어린아이 같은 사람이었다같은 검이라고 생각되지 않았다.

!"

갑자기 흉터 부근이 아려왔다그도 이런 기분이었나함부로 그 사람을 이해하고 싶어졌다일기장을 처분하기 위해 마당으로 나왔다그리고 내 방구석에서 시들어 있던 선인장을 일기장 옆에 놓았다화분과 선인장을 분리했다가시에 손을 잔뜩 찔렸지만 참았다불질러 없애버리려 했는데 불을 든 순간 숨이 턱 막혀 결국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태워버리기엔 죄책감에 마음이 아팠다나는 조심히 일기장 위에 가시만 남은 선인장을 올려놓았다. 이 일기장과 선인장은 땅에 묻어야지그의 무덤을 만들 거다시신 따위 있을 리 없는 검의 무덤을내가 모르는 나의 비밀그의 비밀그리고 다시 나의 비밀전부 혼자서 짊어져야 했던 그 비밀들.

선인장에 꽃이 피는 날은 오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