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lide-image

트리거 워닝: 자살, 자살묘사





소생은 겨울을 싫어합니다. 추위도 싫고 입김이 나는 것도 불쾌합니다. 크리스마스니 새해니 사람들이 괜히 들떠가지고 소란스러운 것도 딱 질색입니다. 소생은 겨울이 정말로 싫습니다.

. 실은 거짓말이에요. 소생은 딱히 추위를 타는 것도 아니고, 입김이 번거로울 일이 뭐 있겠어요? 불쾌하지도 않습니다. 그리고 소생도 크리스마스나 새해를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리는 평범한 소시민입니다. , 이것도 거짓말입니다.

하지만 겨울이 싫다는 건 거짓말이 아니에요. 겨울은 싫어합니다. 겨울이 싫어서, 그냥도 아니고 엄청나게 싫어서, 그래서 소생은 콱 죽어버리려 했습니다.

죽으려고 처음에는 약을 준비했어요. 병원에 가서 요즘 통 잠을 못 잔다고 거짓말을 하고 수면제를 처방받았습니다. 받은 그 약을 먹지 않고 한 손에 쥐어지지 않을 만큼 모았습니다. 어느 정도 충분하겠다 싶어졌을 때, 소생은 유서를 썼습니다. 거짓말이에요. 유서는 쓰지 않았습니다. 유서를 남길 사람이 어디에도 없어서 봐줄 사람도 없거든요.

유서는 쓰지 않았지만 어쨌든 소생은 죽기로 결단했습니다. 수면제를 뭉텅이로 입에 넣고 준비한 물컵을 손에 들었습니다. 그리고 입에 컵을 가져다 댔는데. 결국 그날은 죽지 못했어요. 입안을 가득 채운 수면제의 맛이 너무 비릿해서 도무지 삼킬 엄두가 나지 않았습니다. 토하듯 내뱉은 약이 바닥에 우수수 떨어졌습니다. 그 흉측한 꼴을 보면서 소생은 생각했죠. 약은 무리라고.

그래서 그다음은 뛰어내리려고 했습니다. 이 건은 시도도 해보지 못하고 실패했어요. 시부야의 높은 빌딩은 죄다 옥상 문이 잠겨있었거든요. 적당히 높은 빌딩은 어째선지 엘리베이터가 없어서, 계단을 오르다가 이대로는 정말 죽겠다 싶어가지고 그만두었습니다. 죽으러 가기 전에 죽다니. 너무 우습잖아요.

두 건의 시도가 실패로 돌아가고 소생은 며칠간 고민했습니다. 무슨 방법으로 죽어야 죽을 수 있을까. 매번 들고 다니는 책에는 자살이라는 두 글자만 빼곡했습니다.

1. 달리는 차에 돌진한다.

엄청나게 아플 것 같아서 포기.

2. 독약을 투입한다.

그럼 약을 어디서 구하지? 구할 루트도, 아는 의사도 없다. 포기.

3. 바다에 빠져서 익사한다.

한 겨울에 바다는 너무 추울 것 같기에 포기.

이것저것 재보다 결국 참지 못하고 라무다에게 조언을 구했습니다.

소생. 죽으려는데 무슨 방법이 좋을까요?”

? 겐타로 죽어?”

. 그럴 예정입니다.”

헤에. 죽는구나. 복상사는 어때?”

기각이네요.”

4. 복상사.

상대가 없어서 포기. 그리고 무엇보다 발가벗은 채로 죽는 건 싫었습니다.

며칠을 그렇게 고민한 결과, 소생은 목을 매달고 죽기로 결정했습니다. 상상 속에서는 나쁘지 않았어요.

유메노는 천장에 매달은 밧줄을 보았다. 정성스레 매듭을 묶은 밧줄은 쉬이 끊어질 것 같지 않았다. 자신의 작품에 흡족한 그는 밧줄 아래에 작은 의자를 놓았다. 오늘을 위해 특별히 구입한 앉은뱅이 의자였다. 유메노는 둥그런 작은 지구에 올라섰다. 지구를 정복한 골리앗이 된 그는 천국의 문에 머리를 끼워놓고 달을 향해 뛰었다.’

꽤 괜찮은 장면이죠? 그래서 이대로 하기로 했습니다. 실제로도 의자를 하나 장만했어요. 특별히 저 자신에게 주는 연말 선물로 말이에요. 올 한 해도 수고한 소생을 위해서.

누가 해줄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뒤처리를 위해서 저녁을 먹지 않은 채, 빈속으로 의자 위에 올라섰습니다. 이때까진 무척 만족스러웠어요. 이번에야말로 정말로 죽을 수 있을 거 같은 기분이 들었습니다.

, 안타깝게도 소생은 봐버리고 말았습니다. 의자 위에 올라서서 방 안을 내려다보는 그 순간에. 밧줄에 목을 꿰기 그 직전에 벽에 걸린 달력을 보았습니다.

매번 탁상 달력을 쓰는데 올해는 왜 벽에 크게 걸어놨을까요? 달력에는 빨간 동그라미가 크게 그려져있었습니다. , 내일이에요. 내일은 할아버지의 기일이었습니다.

그걸 안 순간 결국 죽지 못하고 의자에서 내려왔습니다. 아무리 소생이라도 내일은 보내야 하지 않을까요? 그런 마음으로 결국 죽지 못했습니다.

벌써 죽겠다는 마음을 먹은 지도 한 달이 넘었습니다. 소생은 이렇게 우유부단하지 않았던 것 같은데요. 큰일입니다.

그런고로 오늘은 정말로, 진짜로 진정한 결전의 날입니다. 목을 매다는 건 흥이 깨졌기에 포기했습니다. 의자도 버렸습니다. 이제 남은 방법은 하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영화를 따라 하는 건 별로 좋아하진 않는데 영화 속 가련한 비극의 여주인공처럼 죽으려 합니다. 마지막으로 고백을 하나 하자면 아까 적은 유서를 쓰지 않았단 말은 사실 거짓말입니다. 유서는 매번 죽기 전마다 꼬박꼬박 작성했습니다. 슬슬 눈치챘을 거라고 생각합니다만, 이것도 유서입니다. 당신이 이걸 읽는 날이 온다면 어차피 그전에 소생이 죽은 걸 알고 있겠지만요.

이걸 쓰기 전에 욕조에 물을 받아 놨으니 소생은 곧 죽을 수 있을 겁니다. 욕조에 잠겨서 젖은 머리로 적당히 흐느끼는 소리를 내고 손목을 벨 겁니다. 그러면 소생은 죽겠지요.

죽어가는 동안엔 무척 춥다는 것 같으니까, 물도 제대로 데우고 있습니다. 그 사실을 걱정하고 있으셨다면 다행이네요.

그런고로, 소생은 죽으러 갑니다. 안녕히 계시길. 가기 전 마지막에 앞으로 무슨 일이 있어도 다시 눈을 뜰 일은 절대 없다고, 이미 죽은 시체나 다름없다는 선고를 받은 당신에게 기적이 있기를 진심으로 빕니다.

 

-유메노 겐ㅌ

-유메노 올림.-

 

겐타로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깨에 두르고 있던 겉옷은 가지런히 접어 놓고 잠옷 차림인 채로 욕실에 들어갔다. 따뜻한 수증기가 욕실 안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그 덕에 살짝 뿌연 시야로 그는 욕조 안에 천천히 들어갔다. 발부터 조심스럽게 담그니 따뜻한 물이 기분 좋았다. 하지만 몸에 딱 달라붙은 천의 느낌은 조금 불쾌했다. 도합 괜찮은 기분,이라는 걸로 결론짓고 겐타로는 욕조에 푹 잠겼다. 하아-. 그가 깊은숨을 내뱉었을 때, 동시에 불청객이 찾아왔다.

띵동.

정말이지, 뭔가요.”

겐타로는 인상을 찌푸렸다. 한창 좋았는데 말이죠. 그는 분위기를 읽을 줄 모르는 저 손님이 포기하고 떠나기를 기다리기로 했다. 겐타로는 오늘이야말로 죽겠다고 단단히 결심했기 때문에 사소한 예상외의 일은 참고 넘어갈 여유가 있었다.

띵동.

돌아가 주세요.”

띵동. 띵동. 띵동.

1, 5, 10. 돌아오는 대답이 없는데도 불청객은 포기하지 않았다. 먼저 꺾인 것은 겐타로의 쪽이었다.

! 정말!”

그는 욕조에서 벌떡 일어났다. 최악 하는 소리와 함께 물보라가 일어났다. 욕실 바닥에 넘친 물을 무시하고 겐타로는 씩씩거리며 현관으로 뛰어갔다. 한 걸음 걸을 때마다 그의 몸에서 물이 뚝뚝 떨어져 마룻바닥을 더럽혔다.

얼른 내쫓고 죽어야지. 그런 마음으로 겐타로가 벌컥 문을 열었다.

누구시죠?!”

! 겐타로. 뭐야, 있었잖아? 왜 이렇게 오래 걸렸어? 집에 없는 줄 알았다고.”

다이스?”

겐타로가 어리둥절하게 눈앞의 손님을 바라보았다. ! 다이스는 해맑게 손을 들어 인사했다.

너 왜 젖어있어? 물장구라도 친 거냐?”

이 시간에 무슨 일이시죠?”

? 약속했잖아?”

"약속이요?"

진짜냐. 설마 까먹은 거냐? 크리스마스 파티. 오늘 겐타로 집에서 하기로 했잖아? 라무다가 전골 재료를 사 오면 네가 요리해 준다며?”

나는 얻어먹는 역할이지. 다이스가 으스댔다.

그러고 보니 그런 말을 했던 것 같네요.”

젠장. 오늘이 크리스마스였나? 죽을 생각만 가득해서 시간 가는 줄 몰랐어. 겐타로가 초조한 듯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 상관없어.

다이스. 미안하지만 오늘은 돌아가 주세요. 소생은 오늘 중요한 사정이 있는 관계로.”

? 갑자기 마감이라도 생겼어?”

. . 그렇습니다. 그러니까, 아쉽지만 전골은 라무다와 둘이서.”

겐타로는 문을 닫으려고 했다. 닫히지 않았다. ? 겐타로가 바닥을 보자 문틈 사이에 다이스가 발을 집어넣고 있었다. 그는 그 틈을 억지로 비집고 멋대로 집 안으로 들어왔다.

, 뭔가요.”

어차피 그거 거짓말이잖아?”

?”

좋아! 모처럼의 전골이다. 든든하게 먹어주겠어!”

뭐 하는 거예요. 다이스!?”

안으로 성큼성큼 걸어들어가는 다이스를 말리려 했지만 겐타로로는 역부족이었다. 다이스는 겐타로를 신경도 쓰지 않고 옷장에서 멋대로 겐타로가 입고 있는 것과는 다른 잠옷을 꺼냈다.

이거 빌린다. 욕조 써도 되지?”

, 잠깐. 다이스. 그러니까 오늘은.”

내일은 안돼.”

다이스가 단호하게 말했다.

아까부터 대체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건가요? 이야기가 이어지질 않는데요.”

그러니까-. 너 오늘이 아니면 전골 못 먹잖아? 그니까 안된다고.”

그는 굳은 표정을 풀고 겐타로의 이마를 톡 쳤다.

아얏.”

겐타로가 맞은 이마를 문지르는 사이에 다이스는 욕실로 냉큼 들어가 버렸다.

.”

빨리 돌려보내고 죽을 셈이었는데. , 정말로. 뭔데. 다이스가 들어가고 얼마 지나지 않아 욕실에서 콧노래 소리와 함께 물소리가 들려왔다. 겐타로는 멍하니 서서 그 소리를 들었다.

한참을 듣고 있었을까. 겐타로는 갑자기 큰 소리로 웃기 시작했다.

아하 하하 하하. , 하하하. . 하아. 뭐냐고요.”

소생에게는, 저에게는, 내겐. 마지막 죽을 방법이었는데. 다른 건 무섭다고요, 다른 방법은 싫단 말이에요. 마지막 남은 거였는데. 겐타로가 자기 손안에 고개를 묻었다.

, 진짜. 짜증 나.”

죽고 싶단 말이에요. 소생은.

그리고 겐타로가 깊게 숨을 들이쉬며 고개를 들었을 때, 띵동-.

겐타로-! 다이스-!”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잠깐만요, 라무다. 지금 가요.”

겐타로는 자리에서 일어나 책상 위에 놓인 유서를 찢어 버린 후 라무 다를 맞이하러 갔다.

 

어서 오세요.”

"메리 크리스마스! 겐타로!"

"메리 크리스마스. 라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