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lide-image

파이널판타지14 칠흑의 반역자 5.0 스포일러 O

@_hmmyummy 님의 오리지널 모험가 캐릭터가 등장합니다.






린의 결혼식이었다.

온 세상이 전부 그녀를 축복한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성대하고 하객들로 크리스탈리움이 터질 것만 같은, 그런 결혼식이었다. 세상의 이목이 집중된 그곳에서 산크레드는 자신의 팔을 붙잡은 오늘의 신부를 힐끔 돌아보았다.

산크레드가 손잡고 들어가주세요.’

며칠 전 린의 갑작스러운 부탁이었다. 1세계의 예식에는 아버지가 신부를 에스코트하는 게 있다고 덧붙이면서 말이다. 산크레드는 그 말을 듣고, 자기 나름대로의 이유를 붙여가며 거절했으나. ‘그런 건 위리앙제가 하는 게 더 나아. 더 멀끔하게 생겼.’ 같은 말도 안 되는 이유론 린의 고집을 막을 수 없었다.

산크레드가 제 아버지잖아요.’

언제부터 이렇게 단호해진 거지. 산크레드는 고민에 빠졌었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언제나 마음먹은 일엔 누구보다 단단한 아이였다. 예전에도 그랬지. 누군가가 말린다고 말을 들을 아이가 아니었다. 산크레드가 린을 이길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가족이 되어주기로 한 걸. 린의 첫 번째 지지자는 항상 자신이고 싶었다. 그렇기에 산크레드는 결국, 린의 부탁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길게만 느껴지는 버진로드의 끝에서, 여러 가지 꽃으로 화려하게 장식된 단상 앞에 한 남성이 린을 기다리고 있었다. 산크레드는 솔직히 말해서. 그의 입장을 따라 가감 없이 말하자면, 그는 린의 남편이 무슨 짓을 해도 맘에 들지 않았다. 쓸데없이 가꿔놓은 머리도 맘에 안 들었고, 저 다정한 눈빛조차도 불만이었다. 너 같은 놈에게 린을 줄 수 없어! 마음속의 산크레드 꼬마친구가 지치지도 않고 쉴 새 없이 소리치고 있었다. 그래도 산크레드는 그 놈팡이 놈에게 린의 손을 건네주었다.

하얀 장갑을 낀 손이 산크레드의 팔에서, 남자의 손으로 떠나갔다. 산크레드의 눈에 눈물이 살짝 맺혔다. 팔불출이군. 본인 스스로도 그렇게 생각했고 그런 그를 지켜보는 새벽의 모두도 똑같이 생각했다.

다시 만난 새신랑신부는 다정히 주례 앞에 서, 성스러운 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 역할을 모두 마친 산크레드는 조용히 이미 새벽이 자리 잡고 있던 하객들 맨 앞에 가 섰다.

울었네요. 산크레드.”

야슈톨라의 웃음기 가득한 속삭임을 무시하며 산크레드는 린을 바라보았다.

순백의 드레스를 입은 린. 그녀는 자신의 주홍빛 머리색에 어울리는 꽃으로 장식된 면사포를 쓰고 수줍게 미소 짓고 있었다. 아직 저런 걸 입기엔 너무 어려. 산크레드는 조용히 중얼거렸다. 발갛게 물들은 린의 얼굴엔 아직도 앳된 티가 가득해서. 산크레드는 조금 마음이 쓰렸다. 좀 더 어린아이로 남아있어도 좋을 텐데. 처음 결혼식 이야기를 들었을 때부터 쭉 그렇게 생각해왔다. 어리광 부리고 세게 따윈 책임지지 않는 그런 아이로 잠깐의 시간을 보내도 괜찮을 거라고. 훌쩍 커버린 린은 세계를 여전히 세계를 어깨 위에 매단 채로, 결혼 서약을 주고받았다.

떠올려보면 린의 성장기는 어린애라기엔 너무 험난했다. 그 사람과 함께 이 세상을 구했을 때. 어쩌면 린은 이미 나보다 더 어른이었을 지도 모른다. 반지를 낀 그 모습을 눈도 깜빡이지 않고 지켜보았다.

이게 민필리아라는 이름의 숙명일까? 산크레드는 그만 아실리아를 떠올리고 만다. 금발에 푸른 눈. 세상을 구하러 머나먼 길을 떠난 그 아이를, 산크레드는 떠올렸다.

!!”

폭죽 소리와 함께 환호성이 터지고, 산크레드도 억지로 생각을 멈췄다. 그리고 그는 손뼉을 쳤다. 린의 왼손 약지엔 푸른 보석이 박힌 반지가 반짝이고 있었다. 푸르른, 파란색의 반지였다.

축하해. .”

부케를 하늘에 아무렇게나 던져버리고 자신에게 달려오는 그녀를 꽉 안아주며 진심으로 산크레드는 자신의 딸의 새 출발을 응원했다.

여행은 어디로 갈 셈이야?”

새벽의 누군가가 린에게 물었다.

레이크랜드 전역을 돌아볼 생각이에요. 그때 우리가 다 같이 했던 여행을 되짚어가면서.”

이미 몇 번씩 다녀간 곳들이잖아.”

산크레드는 그만 저도 모르게 투명스럽게 말했다. 1세계에선 결혼을 한 뒤에 부부가 여행을 떠나는 건지 모르겠다. 린은 그런 산크레드의 볼을 양쪽으로 잡아당기는 장난을 치더니 배시시 웃으며 그에게 대답했다.

산크레드가, 여러분이 보여준 이 세계를 사랑하는 사람과 한 번 더 보고 싶어요.”

그러니까 웃어요. 산크레드. 기쁜날인 걸?

린은 컸다. 성장했다. 더 이상 구석에서 눈치를 보는 소극적인 아이는 없었다. 기쁜 일인 걸 알고는 있는데. 그래도, 아직은 어리게만 보여서. 산크레드는 린의 말에 조심히 웃었다.

언제쯤 돌아올 셈이야?”

글쎄요? 그건 잘 모르겠지만. 그래도 꼬박꼬박 편지 쓸게요.”

알았어. 조심히 다녀와.”

!”

둥지를 떠나지 않는 새가 없는 것처럼 홀로 서지 않는 아이는 없는 거겠지. 산크레드는 놀림당할 걸 알면서도 크게 코를 훌쩍였다.

 

여행을 떠나는 린 부부를 배웅한 산크레드는 크리스탈리움의 제일 높은 곳에 자리를 잡고 섰다. 이미 저 멀리 날아가 버린 그들의 아마로 마차를 마저 바라보면서, 산크레드는 차마 하지 못한 아까의 생각을 이어나갔다. 아실리아에 대한 것. 민필리아라는 이름을 썼던 강인한 여성의 대한 것을 산크레드는 생각했다.

린이 입은 것처럼 새하얀 드레스를 입은 아실리아를 떠올려보았다. 어쩌면 내가 드레스를 골라줬을 수도 있겠지. 아니면 프라민 씨가 직접 만들어 줬을 지도 모르고 혹은 타타루가 만들었을 지도 모른다. 어쨌든, 그런 드레스를 입고 다른 평범하게 살아가는 이들처럼 결혼식을 올렸을 수도 있을 거다. 원초 세계엔 그런 의식이 없다지만 아실리아를 그녀의 남편에게 안내하는 게 나였을 지도 모르고. 세상을 구하는 책무에서 조금 벗어나서, 평범한 소녀로. 아실리아로. 살았을 지도 모른다.

만약을 생각하는 것만큼 의미 없는 일이 없지만, 그래도 아실리아가. 사랑을 하고, 결혼을 하고, 평온하게 살아가는 그런 일생이 있었을 지도 모르는 일이잖아. 평범한 일상을 살았더라면 좋았을 텐데. 아니, 적어도 그렇게 훌쩍 떠나버리지 않아도 됐을 텐데. 세상을 구하기 위해 자기의 모든 걸 내버리지 않아도. 세상은 너를, 아니. 적어도 나만은.

올려다 본 하늘엔 이제 지긋지긋한 빛은 없었다. 그녀의 눈동자처럼, 린의 반지처럼 푸른 하늘이었다. 우리가 살아왔던 세상에 항상 머리 위에 존재했던 그런 하늘이었다. 민필리아가, 린이, 그 사람이, 우리가 다 함께 되찾은 하늘이 있었다. 아실리아는 보고 있을까? 이 세상이 다시 돌아온 것을, 만족하고 있을까? 다시 코 끝이 찡했다.

그때 찰칵하는 소리가 들렸다. 찰칵? 산크레드는 소리가 나는 쪽을 보았다. 옆에 어느덧 다가온 리마가 있었다. 그녀는 해맑은 표정과 함께, 처음 보는 이상한 물건을 들고 있었다. 아마도 소리는 거기서 난 듯 했다.

그게 뭐야?”

산크레드가 물었다. 에테르 관찰기와 묘하게 비슷한 것 같기도 하고.

사진기라는 거야. 이름은 내가 지었어. 이 기구가 에테르를 보고 그림처럼 이 안에 든 물건에 복사한대. 그림보다 더 진짜처럼 기록할 수 있다구. 린의 결혼식을 위해서 수정공이랑 위리앙제가 만들었어. 대단하지?”

그래? 그럼 방금 그 소리는?”

사진 찍는 소리! 방금 네 표정이 웃겨서 찍었어.”

산크레드는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뭐라고?린의 결혼식 사진도 찍었어. 야슈톨라는 어쩐지 싫어해서 못 찍었는데. 다른 사람들도 한 장씩은 다 찍었어. 위리앙제에게 맡기면 그림처럼 만들어줄 거야. 그나저나 여기서 무슨 청승을 떨고 있었어?”

리마는 산크레드가 보고 있던 것을 찾아 그의 어깨너머를 보았다. 아마로 마차는 사라지고 없다. 남은 건 푸른 하늘을 유영하는 흰 구름들뿐이었다. 그럼에도 리마는 알겠다는 표정을 지으며 산크레드의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아버지도 이제 그만 딸에게서 독립하세요.”

그녀가 놀리듯이 말했다. 산크레드는 대답하지 않고 그녀의 시선을 피해버렸다. 자신이 지금 조금 부끄럽다는 걸 자각은 하고 있었다. 그녀는 먼 곳을 보는 산크레드의 손을 잡아끌었다.

위리앙제에게 가자. 사진이라는 거 보고 싶잖아.”

아니. 별로 생각 없는데. 리마!”

 

리마에게 이끌려 위리앙제의 방에 들어온 산크레드는 떨떠름하게 서있었다. 방금 끝난 결혼식을 뭘 다시 보겠다고. 산크레드가 불만스럽게 말했지만 두 사람 모두 듣는 척도 하지 않았다. 위리앙제는 사진기를 받고서, 잠시만 기다리라고 말하더니 어딘가로 떠나버렸다. ‘특별한 작업실이 필요하거든요라고 말하면서 알 수 없는 물건들을 잔뜩 들고나가버렸다.

엉거주춤하게 위리앙제의 방에서 그를 기다리며, 산크레드는 리마를 보았다. 그녀는 위리앙제의 방에 가득한 책을 뒤적거리고 있었다. 딱히 읽으려는 것처럼 보이지 않았지만.

리마.”

?”

아무것도 아니야.”

뭐야? 궁금하게.”

너도 결혼할 생각이 있어? 하고 물어볼 뻔했다. 산크레드는 미간을 꾹꾹 누르며 구겨지는 인상을 폈다. 그만 차마 해선 안될 말을 할 뻔했다. 아무리 그래도 마지막 예의라는 게 있으니까. 산크레드는 다시 고개를 흔들었다.

위리앙제가 언제쯤 올지 궁금해서 그래.”

흐응.”

리마가 믿지 않는다는 듯 콧소리를 내며 고개를 돌렸다.

 

위리앙제는 그로부터 30분은 더 있다가 돌아왔다. 그의 손에는 도화지,라고 하기엔 너무나 작은 동화책 삽화만 한 크기의 종이들이 들려있었다. 내용물은 삽화보다 더 생동감 넘치는 물건이었지만. 생동감의 수준을 넘어서, 그냥 현실 같았다. 현실을 칼로 오려서 박제한 다음 그 색을 전부 다 빼버린 듯한 느낌이었다. 흑백으로 칠해진 린의 모습이 작은 종이 안에 갇혀있었다.

신기하군.”

산크레드가 감상을 말하자. 리마도 끄덕이며 동의했다.

린의 머리색이 밝아서, 흑백 사진 속의 린의 머리카락이 마치 꼭 금발처럼 보였다. 사진 속의 린 위에 민필리아였을 시절의 린이 오버랩되어 겹쳐 보였다. 그렇게 작았는데 말이지. 금발, 푸른 눈. 아실리아도 생각이 났다.

사진을 보고 있으니 신기해서, 그만큼 그녀는 초상화 한 점 남아있지 않은 게 슬펐다. 1세계의 동화책에 남은 빛의 무녀의 삽화는 도저히 아실리아 같지 않았다. 정말로 그녀의 얼굴은 머릿속에만 그려져 있었다.

지금도 물론 아실리아의 얼굴은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잊을 수 있을 리가 없다. 지금도 눈앞에 있는 것처럼 선명하다. 그렇지만, 그래도. 사람의 기억은 언젠가 흐려진다. 지금은 아니어도, 그게 내일은 아니어도 언젠가. 그녀의 얼굴을 잊을 날이 찾아오겠지.

아실리아의 사진이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왜 이제 와서 이런 걸 만들었어. 진작 만들지.”

린의 얼굴을 매만지며 산크레드가 툭툭거렸다. 그런 산크레드의 눈을 살펴본 리마가 이내 그의 속마음을 알았는지 산크레드가 무어라 말을 더 얹기 전에 입을 열었다.

린의 어린 시절을 보관하고 싶었나 봐. 정말 팔불출이라니깐.”

………저 멀리 사라진 별의 잔상을, 기억 속이 아니라 제대로 된 형태로 남기고 싶어 하는 건 모든 사람들의 소망이니까요. 이해합니다. 저 자신도 가끔씩 그렇게 생각할 때가 있으니까요.”

위리앙제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산크레드를 위로하듯 말했다.

공방 여러분에게 부탁해서 사진을 넣을. 액자를 만들었습니다. 하나. 드릴까요?”

산크레드는 끄덕이며 그에게 액자를 받았다. 그리고 린의 가장 잘 나온 사진을 보물 다루듯 소중히 액자에 집어넣었다. 침대 옆 탁자에 올려두어야지. 산크레드가 생각했다.

벌써부터 린이 보고 싶네요.”

. , 그러게.”

산크레드가 사진 속에서 활짝 웃고 있는 린을 보았다. 부케를 던지던 순간의 린이 그 속에 박제되어 있었다. 평소의 그녀보다 훨씬 역동적이고, 해맑아 보이는 장면이었다. 린은 행복해 보였다. 다행이다.

여동생은 언제 가장 행복했을까. 무척 보고 싶었다. 그녀도, 그녀의 결혼식도, 그녀의 행복도.

'Text'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사추금릉] 근하신년 上  (0) 2020.01.19
[사추금릉] 부전자전  (0) 2020.01.10
[이치사니] 달과 바다와 불꽃  (0) 2019.09.28
칠흑비화 번역 - 기억되지 못한 장편  (0) 2019.09.17
[오오우구] See you again  (0) 2019.08.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