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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검난무 드림커플

드림 사니와가 등장합니다.

이치고히토후리 x 이치노세 유즈루

2018. 02. 28 UP 



여느 때와 같은 아침이었다. 창밖에서 쏟아지는 햇살에 저절로 눈이 떠지는 그런 아침. 굳이 시간을 확인하지 않아도 방 안에 가득 찬 햇빛 덕에 점심이 가까워졌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부스스 해진 머리를 대충 손으로 넘기고 눈에 진득하게 남은 잠에서 벗어나 앉았다. 이제 그가 일어났냐고 물으며 뺨을 쓰다듬겠지. 그럼 나는 그런 그의 손을 불쾌하게 느끼며 쳐내고.

……?”

말을 걸어오는 이가 없었다. 방도 새벽처럼 고요할 뿐이었다. 들리는 건 바깥의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와 아주 작게 들려오는 사람들의 말소리. 어디 갔지? 인상이 절로 찌푸려졌다. 일으킨 몸을 따라 흘러내린 이불이 손안에서 거칠게 구겨졌다. 이치고! 그의 이름을 크게 불렀지만 여전히 내게 돌아오는 목소리는 없었다. 비틀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를 찾는다면 가만두지 않겠어. 내 곁을 떠나는 건 항상 내게 허락했을 때뿐이라고 다시 깨닫게 해줘야지! 방문을 열었다. 미닫이문이 거친 소리를 내며 쾅 미끄러졌다. 그리고 밖으로 한 발자국 디딘 순간 나는 그대로 얼어붙었다. ! 입에서 절로 탄성이 튀어나왔다. 그가 문에 기댄 채로 앉아있었다. 흘러내린 물색 머리카락이 그의 눈을 가리고 있었다. 그렇다. 그는, 나의 이치고 히토후리는 앉은 채로 잠들어 있었다. 홀린 듯이 그의 곁에 다가갔다. 그의 하얀 정수리를 보고 있자니 기분이 이상했다. 나는 이 사람이, 이 검이. 이렇게까지 무방비한 모습을 본 적이 한 번도 없다. 그의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색색 거리는 작은 숨소리가 들려왔다.

?”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가 듣지 않았으면 해서 작게 속삭였다. 그가 깨어나지 않길 바랐다. 아직은 좀 더 그를 구경하고 싶었다. 그리고 그는 내 소원대로 대답하지 않았다. 그 사실에 묘한 고 양감이 일었다. 그를 지배하고 있는 것 같은 착각. 손을 들어 눈을 가리고 있는 앞머리를 걷어냈다. 기다란 속눈썹에 덮인 눈이 드러났고 그 순간 그가 움찔거려 나도 모르게 크게 놀라며 손을 멈췄다. 허공에 굳어있는 내 손을 한번 보고 그의 눈을 한번 보고. 그가 깨지 않은 것 같아 손을 천천히 내렸다. 그를 만지고 싶은 충동이 가시지 않아 두 손을 무릎 위에 가지런히 올렸다. 그리고 눈으로만 그를 탐했다. 그가 자는 모습을 본 건 몇 번 있었지만 그때마다 그는 긴장하고 있었다. 자면서도 전투태세를 갖출 수 있다는 걸 그를 보면서 처음 알았다. 나를 품에 안고, 내 이마에 입을 맞추면서도, 그는 피를 생각했다. 어째서 그렇게까지 날이 서있는지 나는 모른다. 물어보고 싶은 마음도 없고 궁금하지도 않다. 하지만. 내 이치고가 이렇게 풀어져있는 모습이 내 마음을 울리는 건 어쩔 수 없지 않은가. 눈가가 시큰거렸다. 조금은 서러울지도 모른다. 그의 코를 꼬집었다. 5초 정도 지났을까 제발 지려 금세 손을 뗐다. 하아. 한숨이 새어 나왔다.

왜 여기서 이러고 있을까. 처음엔 떠오르지 않았던 궁금증이 일었다. 이치고는 내가 눈을 뜨면 항상 옆에 있다. 내가 명령한 적은 없지만 어느 순간부터 불문율처럼 이뤄지던 것 중 하나였다. 그런데 왜 방 안도 아니고 문 밖에서 자고 있을까. 그가 낮잠이란 걸 자는 사람이었나. 깔끔하게 다려진 옷과, 흐트러진 적 없는 머리카락을 보며 생각했다. 어쩌면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이러고 있었을 수도 있다.

어쩌지.”

그를 깨울 마음은 없지만 그는 일어나야 했다. 나를 보살펴야 했고, 나에게 입을 맞춰줘야 하는 의무가 있었다. 별로 중요하지는 않지만 이 혼마루를 관리하는 일도 맡고 있었다. 이젠 그의 휴식을 끝내야 할 시간이었다. 흔들어 깨우려 그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그리고 바로 뗐다. 재밌는 생각이 들었다. 그를 괴롭히는 건 나에게 중요한 하루 일과 중 하나지.

셋 셀 때까지 일어나.”

하나.”

.”

.”

장난스러운 웃음을 얼굴에 띄우고 그의 손을 잡았다. 맞닿은 온기를 잠시 느끼고 나는 결행했다. 한 번쯤 해보고 싶었던 일이다. 이렇게 그의 장갑 속으로 손을 넣고 장갑을 벗겨내면서 손깍지를 껴보는 일을 말이다.

. 화났다. 쿵 하고 둔탁한 소리와 함께 시야가 돌았다. 어느새 나는 방 안에 들어와 있었다. 바닥에 부딪힌 뒷머리가 아팠다. 여전히 손깍지로 연결된 손을 흔들었다.

아파.”

그는 아무 말 없었다. 어쩐지 하루 종일 혼잣말만 하는 기분이야. 그의 눈을 마주 보았다. 이치고는 아주 많이 화난 표정이었다. 기껏 걷어낸 앞머리는 다시 내려와 있었다. 눈썹은 불편함을 표했고, 눈은. 내 머리색처럼 노란 눈은. 나를 담고 있었다. 그의 눈동자 안에 내가 있었다. 바닥에 깔려서 잔뜩 헝클어진 내가.

하지 말라고 했잖아.”

셋 셀 때까지 일어나라고 했는데 안 일어났어.”

유즈루.

남은 손으로 그의 뺨을 매만졌다. 부드러웠다. 보통 이럴 땐 피곤해 보이는 그의 얼굴은 매우 거칠었다, 라는 감상이 나와야 하는 게 아닌가. 그의 표정은 피곤해 보였지만 뺨은 무척이나 부드러웠다. 웃겼다. 뺨을 매만지고, 그대로 손을 천천히 내려서, 그의 재킷 단추를 풀고, 목뒤를 만지고. 그제야 거친 피부가 만져졌다. 거친 피부보다는 나무껍질 같다는 게 옳을까.

그의 한숨이 내 얼굴에 쏟아졌다. 그가 내 이마에 자신의 이마를 맞대었다. 허락받은 나는 당당히 그의 등을 탐했다. 손끝으로 쓰다듬을 때마다 그가 움찔거리는 게 고스란히 느껴졌다.

잘 잤어?”

. 바람이 좋아서 잠시 앉았는데 잠들었어. 그리고 네가 꿈에 나왔어.”

무슨 꿈을 꿨어?”

너를 이렇게 깔아뭉개고 내 맘대로 탐하는 꿈.”

거짓말이네.”

거짓말이야.”

이러니저러니 해도 그는 내가 잡은 손을 놓지 않았다. 나는 그 손에 입을 맞췄다. 갈색으로 검게 변한 그의 손등에 말이다. 화상 자국에선 재 냄새가 나지 않을까 막연히 생각했던 적이 있는데. 그의 흉터에선 내 냄새가 난다. 그래서 그의 흉터를 보는 것이 좋다. 그럴 때마다 이치고는 나를 죽일 것처럼 굴지만. 그래도 좋다. 그의 추악한 흔적. 내가 가진 모든 증거. 남은 장갑도 벗겨내려 하자 그가 내 손목을 잡아 막았다.

싫어?”

싫어.”

그래, 그럼 어쩔 수 없지. 웃었다. 웃음이 절로 나왔다.

이치고. 쓰다듬어줘. 뽀뽀해줘. 사랑해줘. 당장.”

알았어. 이 손 놓아주면.”

안돼.”

아 간지럽다. 마음이 간지럽다. 웃음이 멈추지 않았다. 그를 사랑하는 걸 멈출 수 없었다. 무슨 꿈을 꿨어? 코를 비비며 내가 다시 물었다. 커다란 성에서 내가 왕이었고, 너는 내 부인이었고. 내 동생들과 함께 행복하게 살았어. 그가 대답했다.

거짓말.”

그가 입을 맞췄다. 내가 네 동생들과 행복할리 없잖아. 나는 마녀다. 추악하고, 더럽고, 질투심이 많지. 아니 마녀도 아닌가. 악만가. 남자를 마녀라고 부를 순 없다. 나는 남자고, 악마고, 네 동생을 싫어하고. 무슨 꿈을 꿨어? 네가 행복해하는 걸 나는 이뤄줄 수 없어.

쓰다듬어줘.”

손이 모자라.”

그럼 그만큼 더 키스해줘.”

말없이 입술이 다가왔다. 그는 오늘따라 말이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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