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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오네트 동인설정 잔뜩 넣음. 전부 날조, 쌍둥이설을 차용했습니다.

퇴고x

 

 

 

 

“소설 속에 나오는 쌍둥이들은 눈만 봐도 서로의 마음을 안다던데, 진짜일까?”

“갑자기 뭔가요?”

라무다가 툭 내뱉은 물음은 정말로 갑작스러웠다. 이 와중에? 겐타로는 젓가락으로 들고 있던 고기를 툭 떨어트리며 되물었다. 아니, 그도 그럴게…. 그들은 지금 겐타로의 집에서 불고기를 먹으며 요즘 유행하는 드라마의 이야기를 하던 도중이었다.

“아니, 주인공 이야기를 하니까 갑자기 궁금해진 걸 어떡해.”

“보통 그런가요?”

“상관없잖아~ 보통이 어떻든!”

그야 그런데요…. 겐타로가 앞접시에 떨어트린 고기를 다시 주워 먹으며 옆의 다이스를 힐끔 훔쳐보았다. 그는 고기에 열중한 지라 두 사람이 무슨 이야기를 하든지 간에 별 흥미 없어 보였다. 하아, 한숨을 쉬고 겐타로가 대답했다.

“소생은 잘 모르겠네요.”

“얼마 전에 나온 겐타로의 소설에도 그런 쌍둥이가 나오지 않아?”

“그건 쌍둥이 소재의 클리셰 중에 클리셰라고요."

“클리셰가 뭐야?”

입안을 고기로 꽉 채운 다이스가 웅얼거리며 물었다.

“전형적인 연출이라는 뜻이에요. 윽, 다이스! 다 씹고 말해요. 더럽잖아요.”

“아하핫, 다이스 햄스터 같아. 웃겨.”

라무다가 목이 막혀 컥컥거리는 다이스를 보고 마구 비웃었다.

"여기 물이요."

“콜록, 콜록, 켁. 죽을 뻔했네. 땡큐!”

겐타로가 건넨 물을 한 모금 마시고 다이스가 숨을 골랐다.

“그런데 나랑 똑같은 얼굴을 한 녀석이 있으면 뭔가 기분 나쁠 것 같아.”

“…그런가요?”

“그럴 거 같은데?”

다이스는 어깨를 으쓱하곤 다시 고기를 허겁지겁 주워 먹었다.

“그건 나도 동감!”

다이스의 젓가락을 휙휙 쳐내며 라무다가 끄덕였다.

“그렇군요….”

겐타로는 젓가락을 내려놓고 물을 마셨다. 잘 모르겠어요. 다른 쌍둥이가 어떤지 따윌 제가 알 리가 없잖아요.

 

 

라무다가 돌아가고, 재워달라고 조르는 다이스도 마저 내쫓아낸 뒤에 겐타로는 아까 라무다가 말한 책을 꺼냈다. 서로의 존재도 몰랐던 쌍둥이가 한 명은 우주의 경찰로 한 명은 우주의 도적으로 재회한다는 SF 소설이었다.

소설 속 쌍둥이는 서로를 만나고 혼란에 빠지지만 금방 우주를 위하는 마음만은 같다는 걸 알아채고 세상에 둘도 없는 친구가 된다는 내용이다.

“말하자면 왕도죠….”

겐타로는 우주가 그려진 표지를 천천히 쓰다듬었다.

‘소설 속에 나오는 쌍둥이들은 눈만 봐도 서로의 마음을 안다던데, 진짜일까?’

“글쎄요…. 저희는 그랬는데요.”

그가 혼자 중얼거렸다.

그래, 소생은…. 형과 나(俺)는 그랬다. 형의 눈만 봐도 그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았다. 말하지 않아도 하고픈 말을 알 수 있었고, 어떤 상황이 닥치면 그거 어떻게 행동할 지도 훤히 들여다 보였다. 우리는 뒤늦게 만났지만 전혀 낯설지 않았다. 형은 내 반쪽이었으니까. 우리는 그런 사이였다.

"다른 사람은 몰라. 한 번도 다른 사람의 짝인 적 없었는걸."

그는 책을 꼭 끌어안았다. 나였다면 결말에서 도적이 순순히 항복하도록 쓰지 않았을 거다. 세상 따위는 버리고, 규율 따위는 무시하고, 자기 형제의 손을 잡고 멀리 도망치는 엔딩으로 만들었을 거다. 하지만 그러지 않았다. 이 책은 '유메노 겐타로'가 쓰는 책이니까. 형이 원하는 방향대로 완성했다.

"형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나는 다 알아."

무슨 이야기를 쓰고 싶어 하는 지도 전부.

 

 

병문안 가는 길은 익숙하다. 중간에 꽃집에 들려서 꽃을 사는 게 모든 준비의 끝이다. 형은 장난을 좋아하면서도 감성적인 사람이었다. 그런 그를 위해서 매번 병원에 갈 때마다 난 꽃을 샀다. 병원에 도착하면 형의 입원실이 있는 층의 간호사들이 유독 친한 척을 하며 인사를 해왔다.

"어머, 유메노 선생님! 안녕하세요! 이번엔 일주일 만인가요? 오랜만이네요."

"안녕하세요."

고개를 끄덕이고 뒤를 돌면 어김없이 예의 그 말이 들려왔다.

"유메노 선생님은 참 상냥하기도 하시지…. 동생을 보러 이렇게 거의 매일 같이 찾아오신다니까…. 거기다가 꽃까지 매번 들고 오시고. 참 다정하셔."

겐타로는 그 말을 들으며 자기도 모르게 그들을 비웃었다. 그 누가 알겠어. 사실 병실에 누워있는 건 '유메노 겐타로' 선생님 본인이고 그를 찾아오는 다정한 유메노 겐타로는 저기 병실에 누워있는 동생 쪽이란걸.

 

 

"안녕, 형."

병실에 들어서며 겐타로가 누군가에게 다정히 인사했다. 1인실 병실에 누워 있는 겐타로와 똑 닮은 얼굴의 남자. 그는 눈을 굳게 단은 채 미동도 하지 않았다.

"오늘은 날이 좋네. 며칠 전에 첫눈이 왔는데 따뜻해서 다행이야."

조금은 창문을 열어놔도 되겠어. 형은 밖을 보는 걸 좋아하잖아. 겐타로가 꽃병에 새로 가져온 꽃을 꽂으며 혼잣말을 했다.

"눈이 온건 봤어? 내 무릎까지 올 정도로 잔뜩 쌓였는데…. 도쿄에서는 드문 일이지?"

창문을 열고, 새 거나 다름없는 물병에 아무도 마시지 않을 새 물을 따랐다. 괜히 그가 맞고 있는 링거를 살펴보고, 주삿바늘 자국이 가득한 팔을 쓰다듬었다. 잔뜩 흉질 팔이 안타까웠다. 예전엔 서생이라는 말이 어울릴 정도로 깨끗했는데.

"실은 거짓말이야. 눈이 온 건 맞지만 쌓이지는 않았어. 하하, 속았어?"

겐타로는 침대 옆에 마련된 간의 의자에 앉았다.

"어때? 나도 이제 꽤 거짓말이 늘었지. 원래 매사에 거짓말을 했던 건 형인데 말이야."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겨울바람이 차가웠다. 감기 걸리면 안 되니까 앞으로 5분만 있다가 닿을 거야. 대답조차 돌아오지 않는 이에게 겐타로는 끊임없이 말을 걸었다.

거짓말이 늘 수밖에 없지. 내 존재 자체가 거짓말이니 말이야. 그래도 들킬 걱정은 하지 마. 형. 이 세상에서 형을 누구보다 잘 아는 건 나니까, 괜찮아. 내가 형을 지켜줄게.

정말이지, 누구에게 하는 말인지. 겐타로는 그대로 엎드렸다. 얼굴 옆에 커다란 바늘이 꽂힌 형의 손이 닿았다.

"미안해. 너무 오랜만에 왔지…. 미안해서 올 수가 없었어. 형이 보면 화낼까 봐. 아…, 아니. 이건 변명이야. 그냥 내가 무서웠어. 요즘 들어 형의 자리를 대신하는 게 너무 재밌어서…. 그게 무서웠어."

미안해. 뭐가 미안한지도 모른 채로 내뱉는 사과였다. 거짓말이 늘면 늘수록 쌓여가는 건 죄책감이었다. 처음에는 형을 이렇게 만든 이들에 대한 분노뿐이었는데…. 이제는 스스로가 즐거웠다. Fling Posse와 함께하는 게 좋았다. 라무다와 엉뚱함도 다이스의 무모함도 곁에 있으니 행복했다. 형을 대신해서 시작한 글쓰기도 어느 순간부터 재밌었다. 자꾸 '유메노 겐타로'로서가 아니라 나 자신으로 글을 적으려 하고 있었다. 그래서 죄책감이 들었다.

나는 도둑이야. 겐타로는 형의 손을 몰래 쥐었다가 금세 놔버렸다.

모든 게 정상이었다면 이 자리는 형의 것이었을 거다. Fling Posse에서 즐기는 즐거움도, 이 부와 명성도…. 원래는 형의 거였다. 심지어 이 이름조차도 내 것이 아니었다. 전부 내가 형에게서 빼앗은 거였다.

울지는 않는다. 이렇게 있는 형의 앞에서 울기엔 너무 양심이 없었다. 겐타로는 고개를 들어 형의 얼굴을 보았다. 얼핏 보면 그저 세상 편안히 잠을 자는 청년처럼 보였다.

"모르겠어."

겐타로가 작게 중얼거렸다. 그의 목소리에는 울음이 배여있었다. 정말로 하나도 모르겠어. 예전에는 뭐든지 알았는데…. 이제는 형을 얼굴을 봐도 무슨 생각을 하는지 난 잘 모르겠어.

무슨 생각을 하고 있어? 어떤 꿈을 꾸고 있어? 나한테 화났어? 아니면 나를 잊어버렸어?

"잘 모르겠으니까…. 그러니까, 말로 해줘. 형…. 응?"

미안해. 내가 더 힘낼게.

진심을 담아 전한 말은 그에게 닿았을까. 난 이제 형의 마음을 모르는데, 형은 아직도 내 마음을 다 알까. 우리는 전부 다 알았는데, 그런 쌍둥이였는데….

"보고 싶어. 형."

조용히 들리는 유메노 겐타로의 숨소리만이 그가 살아있다는 유일한 증거였다.